그림과 세상을 대하는 휘경의 태도는 단호하다. 예를 들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 그는 색과 형에 대해, 그리고 그림에 대해, 또 세상에 대해 파악한 바를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가 가진 대부분의 고민들은 자신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형식과 언어에 그리고 경험과 사물에 가닿는다. 우리는 공고한 듯 느껴지는 회화의 여러 조건 혹은, ‘조건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정해진 답이 없는 것에 대한 단호한 대화. 꺼내어진 생각들을 자신의 그림과 태도로 옮기며 그는 이번 전시를 만들었다. 나는 그와 형形을 놓고서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다. 짐작건대 그는 분명 그것이 만들어지고 무너지는 과정, 이름 붙여지고 변하는 과정 등을 면밀히 기록하고 그 속에 꺼내어 보고 싶은 입장들을 담아두었을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에는 어떤 것을 담아두기 위한 임시적 형태의 공간이 있다. 안에는 정량적으로 해석하기 힘든 경험의 순간이나 기존의 틀에 위배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들, 그 과정에서 마땅히 자연스러운 색채와 형이 있다. 그의 자취를 밟아보자면 이렇다. 시럽과 부스러기: 따뜻한 차와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하는 그는 아마 찻속에 휘감아진 시럽의 진하기와 파이의 부스러기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마주한 형상과 색채들을 거쳐 그림으로 발화할 때, 찐득한 시럽과 잔잔히 부서지는 조각들을 담아둘 임시적인 공간을 지을 것이다. 이때 그것을 어떤 형과 색으로 담아낼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고민이 동반될 것인데, 가령 회화에 대한 고찰, 매체와 재료의 호응, 자신의 이야기, 그 너머의 균형 등에 대해 떠올릴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관계성에 주목한 듯 보였다. (나는 전시를 보며 그의 그림에서, 관계성 그리고 유동적이고 비선형적인 움직임을 감지했다.) 화면을 하나씩 살펴보자면 하나의 그림이 다른 하나의 그림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떠올리게 된다. 다시 말해 화면으로 불러온 형상과 색은 화면 간의 경계를 넘어 다른 화면들로, 비선형적인 관계를 이루며 이루어지는 듯했다. 결국 그림들의 관계가 전시장 전체에 퍼지는 모양새로 읽혔는데, 이런 종류의 전이는 일종의 자취(형상)가 되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가 캔버스를 틀어둔 것이 이러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는 ‘움직임을 따라가며 눈을 이동해 보기’를 원해서였을 것이라고. 사실 별것 아닐 수도, 혹은 굉장히 도전적일 수도 있는 이 장치는, 하나의 형상이 또 다른 형상을 불러오고, 색채가 형상을 불러오는, 그의 작업에서 일어나는 연쇄적인 작용들에 대한 비유가 된다.
전시의 제목 ‘Marching Ants’ 또한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개미가 줄을 지어 이동하는 것에서 비롯된 이 용어는, 그 안에 가둬진 형태를 드러내는 데에 쓰이지만 본질적으로 임시적인 경계(border)이자 경로(path)로 해석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시도한 것은 공간 안에서 그리고 화면 안에서 임시적인 경계와 경로를 만들어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경계는 어떠한 기준을 기점으로 나누어지는 개별적인 지대를 형성한다. 그리고 기울어진 사각형 모양과 그 안에 뭉쳐진 피그먼트, 흩어지는 색들과 점성을 가지고 흐르는 기름 자국을 따라 임시적인 경계는 만들어진다. 그러한 경계들이 겹쳐지거나 이어질 때, 다시 말해 관계성을 가지고 움직임을 만들어낼 때 그것은 경계인 동시에 경로가 된다. 형태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을 때 그가 주목한 것은 단지 모양과 외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형태가 가지는 이러한 속성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휘경은 평소 자신의 그림을 설명할 때, 특정 색채나 형상의 묘사에 집중하기보다, 그것이 만들어지게 된 경험이나 사건, 혹은 회화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입장을 이야기하곤 한다. 이는 그가 말하는 ‘형태’가 단순히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외형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정의되고 맥락에 따라 변하는 개념임을 시사한다. 즉, 그에게 형태란 특정한 순간과 상황 속에서 임시적으로 자리하는 어떤 입장이나 태도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화면 속 형태들은 독립적이거나 절대적인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형태는 작업에서 화면 내/외부적으로 영향을 주고 변화하며,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 속에서 다른 요소들과 연결된다. 그가 의도적으로 화면을 기울인 것, 색과 형상이 서로를 침범하도록 두는 방식 역시 이러한 그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번 전시가 ‘어떠한 틀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조금 더 느슨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느꼈다.
이 전시에서 공유되는 지점은 형태의 본질이라기보다, 그것이 생성되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의 관계성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것을 하나의 완결된 개념으로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임의의 연결고리이자 다른 요소들을 잠시 엮어두는 역할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비정형적 이동과 변환, 새로운 연결로 소환되는 형태에 대한 시선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흐름을 감지하도록 한다. 이는 화면 안팎에서 구성되는 시각적 장치들을 넘어 형태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그의 작업은 회화를 아우르는 여타 요소들을 정의 내리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정의가 만들어지고 흐트러지는 지점에 머무르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되짚으며 그가 소환한 화면과 공간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면, 그가 담아둔 입장과 고민들이 앞으로 어떤 흐름을 만들어갈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바라보는 세계의 단서들은 이미 그곳에 놓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